잉카의 여인
윤형석
아직 그곳에 계신가요
저에겐 아직 그곳에 계십니다
대양서림 길가 좌판에 우아한 자태로
여전히 계십니다 좌판에서 저는 무엇도
가져오지 못 했지만 아주머니께선 저에게
살며시 남아메리카 대륙을 내어 주셨습니다
저의 마추픽추는 아주머니로부터 출발했으며
안데스 잉카의 상상도 아주머니께서 우아하게
내어 주셨습니다
대양을 건너 잉카에서 오신 아주머니와
동글동글한 갈색의 감자* 이역만리
이곳으로 오기까지 긴 여정이었을,
풍요롭게 담긴 모락 김 올라오는 감자로 하여금
아주머니를 회상합니다
마야 태양신이 하사한 듯 흑색 찬란한
화려한 치장에 호연히 숨겨두신 담담하던
낯빛을 잊지 못합니다 색과 끝이 거칠고 패인
감자와 닮았음도 기억합니다
담담하신 그럼에도 내어줄 수 없는 흑색
찬란함은 이국땅 잉카의 여인에게 삶의
굳은 의지였을까요 바램이었을까요 무엇
이었을까요 흑색 찬란한 여정으로 이곳에 온
모락 김 올라오는 감자처럼 아주머니께도
흑색 찬란한 상실의 여정이 있으셨겠지요
애가 타 끓은 지난 세월이 있으셨겠지요
아주머니, 잘 계시는지 안부 여쭙습니다
여전히 우아하신지요
여전히 흑색 찬란하신지요
여전히 잉카를 내어주고 계신지요
* 감자는 남아메리카 칠레, 페루가 원산지다.
2024/08/15
2020/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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