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텔 앞에서
윤형석
봄날 이른 아침에 술을 마셨다
주황색 써니텐 탄산음료도 한 잔 마셨다
써니텐 페트병에 써진 문구가 이뻐
가만히 보고 있자니 몇 줄 글이 흘러나왔다
흘러나온 글 몇 줄을 타이핑해
봄날 이른 아침에 함께
술잔 맞댄 동지에게 선물로 주었다
동지는 지방 신문사에 그 몇 줄을 보냈나 보다
얼렁뚱땅 그 몇 줄이 월간지에 인쇄되어 나왔다
동지는 어떤 주인공이 된 듯
감동을 했다며 내게 부탁을 했다
바닷가 앞에서
그 몇 줄을 낭독해 줄 수 있겠냐는 부탁
적잖이 뻘쭘한 나는 알았네 알았네 하며
덜 뻘쭘할 명당자리를 찾았지만
마땅한 곳이 보이지 않았다
어느 길 끝 종점에 이르러서야
하는 수 없이 뻘쭘한 낭독을 마치고
돌아서려는데 반짝반짝 건물
고개 드니 무인텔 앞
나는 어찌할 수 없는 여러 부끄러움에
곧장 무인텔 속으로 들어가
홀딱
숨어버리고 싶었다
2024/08/19
남기고 싶은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