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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기록

✔️ 섬달천 엄니

섬달천 엄니

                              윤형석



째깐했을땡께
나가 구례 살쩍잉께 오십 년도 더 되부렀지
할무니한테
할무니 나는 있는가
나중에 바닷가로 시집갈라네 했당께
바다도 모른디 어찌 그리
입방정을 떨어쌋는가 몰라
여그 바다로 홀리서 온 거 같애
이리될 줄 어찌 알았당가

열여섯까지 구례서 살다가
다음 해에 서울로 온 집구석이 올라갔제
형님 서울서 청소만 해도
농사짓는 거보다 나응께 올라오란 작은 아부지가
나 아래로 줄줄이 머시마만 셋잉께
울 아부지도 동생들 보고 올라갔을꺼여
울 아부지도 성공한 동생 말을 잘 들은 거제

작은 아부지가
천호동에서 지금 보믄 가정의학과를 했제
뒷문으로 울 아부지 동아제약에 들여보내 주고
울 아부지는 거기서 청소를 했제 울 엄마는
국도극장 앞에서 자판으로 장난감을 팔고
그래가꼬 우리 동생 셋은
모두 대학 나왔응께 성공한 거제

서울서 일 댕기다가
스무 하나에 여기로 피서를 왔는디
여가 지금은 다리가 있지만 서도
그때는 물이 들믄 배를 타고 나갔어야 했는디
근디 그날 우리 신랑이 어찌 배를 안 태워 주데
어찌다봉께 못 나가고
그날이 우리 신랑이랑 첫날밤이 돼 부렀당께
우리 신랑이 그 유명한 58년 개띠네
다른 개띠들은 나가 개띠요 한디
58년 개띠들은 꼭 58년을 붙이드만
참말로 58년 개띠들은 유명하당께

우리 시아부지는
나를 얼매나 이뻐했는지 안가
우리 신랑이 칠 남매 막뚱인디
막뚱이 우리 신랑 보다 우리 시아부지는
나를 더 이뻐라 했당께 멀리멀리 가신지도
오래 오래 됐지만 서도 지금도 좋은 것만 보믄
우리 시아부지가 생각이 나네
시제 갔다 몰래 숨키온 사과랑 배를
맥여주던게 지금도 선해 모르는 사람들은
나를 딸로 보고잉 큭큭 중매도 들어왔당께
쌀밥도 한번 못 먹어보고 가셔가꼬
지금도 좋은 음식만 보믄
나는 우리 시아부지가 생각나네

..

엄니, 세월한테 하고 자운 말 있는가

나가 힘들게는 살았지만서도 근디
해논 것도 없는 거 같고 세월한테 좀 허무허네
나를 위해 산 적이 없는 거 같애,
밥 해야 것네 또 저녁밥때가 되었네 하신다

가만히 앉아 계시다 붉어지시며
고개를 떨구신다

해질녘
붉은 구름이 덮쳐왔다

———————————————

섬달천 엄니 (초판)

                              윤형석



째깐했을땡께
나가 구례 살쩍잉께 오십년도 더 됐제
할무니한테
할무니 나는 있는가
나중에 바닷가로 시집갈라네 했제
바다도 모른디 어찌 그리
입방정을 떨어쌋는가 몰라
여그 바다로 홀리서 온거 같애
이리 될줄 어찌 알았당가

열여섯까지 구례서 살다가
다음해에 서울로 온 집구석이 올라갔제
형님 서울서 청소만 해도
농사짓는거 보다 나응께 올라오란 작은 아부지가
나 아래로 줄줄이 머시마만 셋잉께
울 아부지도 동생들 보고 올라갔을꺼여
울 아부지도 성공한 동생 말을 잘 들은거제

작은 아부지가
천호동에서 지금보믄 가정의학과를 했제
뒷문으로 울 아부지 동아제약에 들여보내 주고
울 아부지는 거기서 청소를 했제 울 엄마는
국도극장 앞에서 자판으로 장난감을 팔고
그래가꼬 우리 동생 셋은
모두 대학 나왔응께 성공한거제

서울서 일 댕기다가
스무하나에 여기로 피서를 왔제
여기가 지금은 다리가 있지만 서도
그때는 물이 들믄 배를 타고 나갔어야 했제
근디 그 날 우리 신랑이 배를 안태워 주데
어찌것는가 못 나가고
그 날이 우리 신랑이랑 첫날밤이 되부렀당께
우리 신랑이 그 유명한 58년 개띠네
다른 개띠들은 나가 개띠요 한디
58년 개띠들은 꼭 58년을 붙이드만
참말로 58년 개띠들은 유명하당께

우리 시아부지는
나를 얼매나 이뻐 했는지 안가
우리 신랑이 칠남매 막뚱인디
막뚱이 우리 신랑 보다 우리 시아부지는
나를 더 이뻐라 했당께 멀리 멀리 가신지도
오래 오래 됐지만 서도 지금도 좋은것만 보믄
우리 시아부지가 생각이 나네
시제 갔다 몰래 숨키온 사과랑 배를
맥여주던게 지금도 선해 모르는 사람들은
나를 딸로 보고잉 큭큭 중매도 들어왔당께
쌀밥도 한번 못 먹어보고 가셔가꼬
지금도 좋은 음식만 보믄
우리 시아부지가 생각나네

..

엄니, 세월한테 하고자운 말 있는가

나가 힘들게는 살았지만서도 근디
해논것도 없는거 같고 세월한테 좀 허무허네
나를 위해 산 적이 없는거 같애,
밥해야 것네 또 저녁밥 때가 되었네 하신다

가만히 앉아 계시다 붉어지시며
고개를 떨구신다

해질녘
엄니같은
붉은 구름이 밀려왔다

———————————————

엄니, 세월한테 하고자운 말 있는가 했다

나가 힘들게는 살았지만서도 근디
해논것도 없는거 같고 세월한테 좀 허무허네

나를 위해 산 적이 없는거 같애, 하신다
밥해야 것네 또 저녁밥 때가 되었네, 하신다

가만히 앉아 계시다 붉어지시며
고개를 떨구신다.

해질녘
엄니같은
붉은 구름이 밀려왔다


2024/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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